[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19대 국회 마지막 상임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11일 전체회의를 소집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뤘지만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사과’ 대신 ‘책임 통감’이라는 말로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품 판매를 허용한 정부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9대 국회 임기 내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특별법까지 발의했던 장하나 의원이 윤 장관을 향해 “정부 책임도 있는데 공식적인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에 그치고 있다. 정부의 책임이 있는가? 사과할 의향 있는가?”라고 물었지만 윤 장관은 “사실상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윤 장관의 태도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19대 국회 마지막이 될 환경노동위원회가 열렸지만 정부는 살인제품을 판매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업체 두둔, 피해자 구제 반대


윤 장관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가습기살균제 문제와 관련된 질의에서도 윤 장관은 “당시 기술 수준으로 제품의 결함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업체를 두둔했고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피해보상은 옳지 않다”며 피해 구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심상정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안방의 세월호’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사명이다.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환경부뿐만 아니라 복지부, 산자부 모두 포함해서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축소 은폐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책임 회피는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해명자료를 내고 ‘가습기살균제는 안전관리대상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산자부 책임이 없다고 변명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의원은 “어린이, 노약자 등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우려 있는 경우 안전관리대상 공산품에 포함된다.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측 간사인 권선동 의원은 “법안소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임기 내내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통과를 재촉하는 의원이 한명도 없었다. 나를 포함해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오도하는 명백한 ‘물타기’다. 야당 측 간사인 이인영 의원은 국회 속기록을 근거로 “2014년 12월2일, 2015년 4월27일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다뤘지만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면서 늦어진 것이다. 국회에서 책임 있는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를 방해한 세력이 있다”며 반박했다.

실제로 권 의원은 예산 등을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반대했고 여당은 정부의 부처 간 입장 차이를 핑계로 법안 처리를 미뤄왔다.

기획재정부 역시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에 소극적이었다. 우원식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세월호 참사와 비교되는 이유는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아직도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조차 않기 때문”이라며 “환경부 장관은 국민 세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고 기재부도 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기 때문에 개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가 심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살인제품 판매를 허가한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피해자 구제에도 인색했던 과거를 지우고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태아 사망 사례 접수 거부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가습기살균제가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금까지 태아 피해가 인정된 사례는 3건인데 모두 생존해 있다. 그러나 태아가 사망했을 경우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장하나 의원은 “옥시 실험을 통해 실험용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태아 사망 사례도 많았지만 조사의 한계 때문에 신청조차 못한 사례가 많다”며 “사망한 태아에 대한 피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 인정이 힘들다는 것이 환경부 입장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이 “당연히 피해조사를 하고 있다”고 답변하자 방청석에서 “(피해조사)접수를 거부했잖아”라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안성우씨였다. 그는 지금도 전국을 돌며 1인 시위 등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안성우(오른쪽 노란조끼)씨가 윤성규

환경부장관의 답변을 듣고 있다.



재계 반발에 넝마 된 화평법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공론화됐지만 여당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로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때 언론의 관심이 유병언 쫓기에 집중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옥시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화평법은 대통령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과 재계의 집중포화 속에 핵심조항이 빠지거나 대폭 완화된 형태로 너덜너덜해졌다.

심상정 의원은 “화학산업계의 경쟁력은 안전이다. 화학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 화평법이 필요한데 대통령까지 나서 화평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역시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장관으로서 응당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수백명의 국민이 사망했는데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피해자와 기업 간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그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환경운동연합은 “옥시 불매운동을 마무리한 이후 환경정책을 혼란에 빠뜨리고 환경부 위상을 추락시킨 환경부장관에 대한 퇴진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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