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온실가스를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한 배출권거래제가 시행 1년을 맞았지만 긍정적인 평가는커녕 차라리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과도한 기업 봐주기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 1년을 평가하기 위해 국회기후변화포럼이 24일 개최한 정책토론회는 “이렇게 할 바엔 차라리 폐지하는게 낫다”는 주장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반면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온실가스를 효과적으로 감축했다고 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 1년을 맞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사진=김경태 기자>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시행됐다. 산업계는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끝까지 반대하다 시행이 결정되자 배출권 추가 할당을 요구해 끝내 관철시켰다. 여기에 정부는 배출권 가격을 톤당 만원 이내로 묶는 조치를 추가해 사실상 기업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

환경단체들은 과도한 기업 봐주기로 배출권거래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산업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배출권 할당을 초안에 비해 5800만톤이나 늘려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 1년도 지나지 않아 관리부처가 환경부에서 기획재정부로 바뀌었다. ‘환경’을 관리하는 부처에서 ‘돈’을 관리하는 부처로 옮긴 것은 정부가 배출권거래제의 핵심을 무엇에 두고 있느냐를 보여줬다. 이날 발표에 나선 기획재정부 오일영 기후경제과장은 본래 환경부 소속이었지만 업무가 이관되면서 덩달아 옮겨갔다.

엄살 부리던 산업계, 현재는 ‘침묵’

배출권거래제 시행 전 기업들은 배출권이 지나치게 적어 수십조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엄살을 부렸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부족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아돌았다.

이날 발표에 나선 기획재정부 오일영 과장은 “배출량을 정산한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4260만톤, 배출권은 5억4870만톤으로, 610만톤의 여유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배출권 거래시장의 거래부진에 대해 “공급(배출권) 부족에 따른 시장 유동성 문제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배출권에 여유가 있는 기업들마저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워 시장에 물량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배출권은 총 1227만톤이 거래됐으며 금액으로는 1697억원에 해당한다. 배출권 가격은 지난해 만원대를 유지하다 올해 들어 2만원대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5월 말 이후 1만7000원대로 하락한 후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오 과장은 “참여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를 규제 대상이지 비용효과적인 감축수단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감축을 유도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안윤기 상무는 “플레이어들이 시장 불확실성을 고려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만 노동·상품시장과 연계해 기술을 창출하고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배출권 가격 통제로 낮은 가격이 유지되면 ‘비싼 배출권을 사느니 차라리 녹색기술을 개발하자’는

기업의 동기는 약해지고 배출권거래제가 애초 목표로 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가격 통제는 코미디”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평가는 신중론과 실패론으로 엇갈렸다. 한국법제연구원 현준원 연구위원은 “배출권 거래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시행 초기 시장안정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제도를 제도가 설계했기 때문이지 제도가 실패한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며 “제도의 성패는 온실가스 감축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잣대로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 연구위원은 “당장의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나치게 큰 제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큰 변화 없이 현재의 배출권거래제를 좀 더 운영한 후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배출권거래제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강성훈 부연구위원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달성 가능한 배출권 적정가격은 2만6300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탄소세 도입을 동시에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처럼 정부가 기준가격을 정해 통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부연구위원은 “배출권 가격이 적정수준보다 낮으면 기업들이 녹색기술을 개발하거나 이용하려 들지 않아 배출권거래제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행 초기부터 제도에 비판적이었던 환경단체 사이에서는 ‘배출권거래제 무용론’까지 나왔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은 “정부가 산업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아무 근거도 없이 온실가스 5800만톤을 추가 할당하는 등 기업들의 경쟁력 논리에 포획됐다”며 “정부 위원들과 경제부처 추천을 받은 위원들이 산업계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한 결과 기업 봐주기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가격 통제에 대해 안 소장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배출권 가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려면 탄소세를 도입하는 게 낫다.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제도”라고 꼬집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와 경제신문들은 수십조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해 산업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측을 쏟아냈다.

그러나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배출권거래제와 산업경쟁력을 연관 짓는 분석이나 언론은 없다. 주관부처는 환경부에서 기재부로 바뀌었고 기업들은 ‘지금처럼만 하자’는 분위기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약속이 공수표가 될 것이라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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