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제22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가 2주간의 협상을 마치고 ‘마라케시 행동 선언문’ 채택을 끝으로 폐막한 가운데 향후 대응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BAU 대비 37% 감축 로드맵을 내놨지만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사국들은 2018년까지 파리협정 이행지침을 마련한다는 목표 아래 작업 일정과 계획에 합의했으며 차기 협상회의(2017년 5월)까지 국가제안서를 UN사무국에 제출하고 분야별 협상그룹 간 심층적인 실무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INDC를 제출한 상태다. 아울러 목표 이행을 위한 분야별 감축목표를 담은 2030년 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을 지난 6일 확정했다. 

7일 국회기후변화포럼 주최로 열린 ‘COP22 협상결과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외교부 김찬우 기후변화대사는 “국제사회 중견국가 및 온실가스 다배출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기후변화포럼 주최로 COP22 이후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경태 기자>



국회 심의과정 포함시켜야


그러나 정부가 국제사회와 약속한 감축목표와 감축로드맵 모두 국내·외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로드맵 작성에서 각 분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밀실협의’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로드맵 작성에서 공식적인 의견수렴은 공청회와 국회 토론 각각 1회가 전부였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국회 심의과정을 공론화 과정으로 포함시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필요가 있다”며 “이전까지 전례가 없었던 중장기 재정소요를 반영한 재정투자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0년 감축목표에 비해 2030년 감축목표가 완화돼 ‘후퇴금지’라는 국제적 약속을 어겼다는 지적도 있다. 2030년 BAU 대비 37% 감축은 2020년 BAU 대비 30%에 비해 더 많이 감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연간 감축량을 비교하면 2020년 목표가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목표 역시 2020년 감축목표 대비 6.5%p 감소해 민간을 포함한 비산업 분야 부담이 늘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덕영 교수는 “국내 감축분 중 70%를 배출하는 산업부분에서 12%를 감축하고, 30%를 배출하는 비산업 부분에서 13.7% 감축을 부담시키는 근거는 무엇이며 실현 가능한 일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화력과 원전 위주로 전력을 생산하고 온실가스 배출권 구입을 위해 추가로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차라리 그 돈으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큰

이익이 아닐까?



모두가 감축국, 배출권 팔 나라 있나?

전체 감축분의 1/3을 해외에서 얻는 방안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BAU 대비 37% 가운데 1/3 가량인 11.3%는 해외에서 감축하며 배출권거래제 통합시장 형성 등 향후 정세변화를 반영해 나중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더블 카운팅이 금지되고 사실상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 감축의무를 지게 되는 파리협정체제에서 가능한 방안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재원조달 방안도 불투명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BAU 대비 11.3%에 해당하는 양을 국제시장에서 탄소배출권으로 구입하기 위해서는 약 1조원을 주기적으로 쏟아 부어야 하지만 로드맵에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빠져 있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지방정부와 시민참여’를 통해 1조원을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금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에서 1조원을 모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국내 저탄소경제 역량 강화에 써야 할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해외에 투자한다는 점, 파리협정이 후퇴금지의 원칙을 취하고 있어 국내 투자를 우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매우 유리하다는 점도 문제다.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대규모 증설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1조원을 투입해 배출권을 구입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에 사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이익이다.

실제로 정부는 2022년까지 노후 화력발전소를 없애는 대신 10배가 넘는 용량의 화력발전소를 신설해 전력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부담 완화는 전력수요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산업계에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이처럼 불합리한 조정이 이뤄지는 것은 온실가스, 에너지, 전력, 산업발전 등 각각의 계획이 따로 수립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최상위 계획이며, 설정된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춰 에너지계획 등이 마련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수급계획과 온실가스감축계획관 연계성이 부족해 제각각 목표를 수립·운영하고 있다. 

기후변화 적응 분야는 더 취약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 등 기상재해 피해 빈도와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적응 대책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적응 분야의 취약성도 문제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 농업, 질병, 생태계 변화 등 분야별 피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지만 개별적으로만 다뤄지고 있으며 지자체별 적응 담당 공무원은 평균 1명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취약성 평가에 사용되는 지표들에 대한 자료는 국가 또는 광역 단위에서만 존재하며 기초지자체는 이를 가져다 짜깁기한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서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된 조항은 1개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선언적인 조항에 불과하고 지자체 적응계획 수립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적응 대책이 실제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최준영 입법조사관은 “기후변화 적응은 해를 거듭할수록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범위 및 재원에 관한 논의는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게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최근 논의되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개정을 통해 적응 부문의 강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는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의심받고 있다. 물론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산업 경쟁력’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기후변화조차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박덕영 교수는 “우리나라는 외견상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무역의존에 따른 통상 우위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국제회의에서 과묵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지만 ‘기후변화대응이 통상에 장애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제3조5항을 삽입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꼬집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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