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김포 환경피해 지역주민들이 제기한 환경오염피해배상 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이하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신청에 대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구제급여 지급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한데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김포 거물대리·초원지리 주민 21명은 지난 12월8일 환경오염피해구제 신청을 접수했으며 이는 2016년 1월1일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시행 후 접수된 첫 사례였다.

이 지역의 환경피해 심각성은 기존의 역학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 초원지리의 경우 폐암 표준화발생비가 2.08로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지역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됐음을 의미한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임종한 교수는 “거물대리와 경기도 산단지역을 비교한 결과 카드뮴을 제외한 구리, 비소, 납, 아연, 니켈의 평균 농도와 최대값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며 “지속적인 환경오염물질 노출이 폐암, 심장질환, 골다공증 발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포 환경피해구제 거절을 계기로 환경오염피해구제 제도가 과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개최됐다. <사진=김경태 기자>



김포지역의 집단적 환경피해가 밝혀졌지만 개인이 특정 기업을 상대로 ‘특정물질 배출과 건강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법정에서 기업을 상대로 환경피해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국가에 피해구제를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 23조1항에 따라 지급대상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는 3줄짜리 답신으로 피해구제를 거절했다. 심지어 거절 사유조차 없었다.

이에 대해 박창신 변호사는 “뭐가 문제가 돼서 지급이 거절됐는지를 알아야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법률가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재심사 청구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환경산업기술원의 통지는 처분의 근거 및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리 구조 자체가 모순

 

김포지역은 주택을 둘러싸고 수백개의 공장이 난립하면서 심각한

환경피해를 유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진=환경일보DB>

이 같은 지급 거절 결정이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원인이 불분명한 피해 구제(23조)’를 규정했지만 법 구조는 ‘원인이 불분명한 피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법 23조에서 규정하듯 ‘원인이 불분명한 피해’에 대해 구제급여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그 대상을 ‘시설’로 인한 환경피해로 한정하고(3조),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에게 피해 원인업체를 특정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결국 ‘원인자가 불분명한 환경피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과거 환경분쟁조정 사례와 판결 등을 볼 때 김포 환경피해는 원인자 불명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또 다른 요건인 환경피해를 유발한 기업이 보상을 할 여력이 없거나 이미 폐업한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민사소송 대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포주민들의 피해구제를 돕고 있는 시민단체인 환경정의 관계자는 “환경산업기술원이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했을 때 주변 기업들을 환경오염 원인자로 지목한 것과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며 “공장과 떨어진 거리, 질병이력 등 개개인마다 각각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거기 맞춰 환경피해를 규명하고 이를 법정에서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서 국가에 피해구제를 신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리하자면 피해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가해자를 피해자가 지목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설사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고 해도 ▷업체가 피해보상을 할 여력이 없거나 ▷이미 폐업해서 피해구제를 할 주체가 없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환경오염피해구제가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환경피해 진단 내릴 병원 있겠나

 

박창신 변호사는 민사소송보다 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환경피해구제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도대체 어떤 민간병원이 국립환경과학원도 섣불리 하지 못하는 ‘환경성 질병’ 진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라며 “통상적으로 기대하기 힘든 역학조사보고서를 첨부했음에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환경피해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김포환경피해는 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환경피해로 인정할만한 질환도 없었다”라며 “올 하반기부터 특이성 질환에 대해서는 인과관계 입증 이전에 치료비 등을 선지급 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처럼 민사소송이나 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 국가가 먼저 구제에 나서고 이후 가해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까다로운 심사와 불투명한 절차 때문에 구제의 대상이 돼야 할 피해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김포 환경피해의 경우를 인정해주면 이와 유사한 전국의 모든 사례를 인정해야 한다. 관련 예산이 고작 50억원에 불과한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며 “기술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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