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업계 압력과 여당 반대로 '누더기'로 변해
허가제→등록제 둔갑,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어

[세종=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정부가 동물원과 수족관에 사는 동물들의 ‘서식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한 동물원법 시행령을 발표했지만 핵심조항이 모두 빠져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장관 조경규)는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사는 동물들의 서식 환경 개선을 위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 시행령이 5월2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오는 5월30일부터 시행되는 동물원법에는 동물원 및 수족관 운영을 위한 시설, 인력, 보유 동물 관리계획 등의 등록 의무가 신설된다.

특히 환경부는 동물원 운영에 필요한 인력기준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동물원은 수의사(비상근직 포함)를 1인 이상 고용해야 하며, 보유 동물 종수 기준으로 40종 이하면 사육사를 1명 이상으로, 70종 이하는 사육사 2명 이상, 70종 이상은 3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수족관은 고래 등 해양포유류를 사육하는 경우에만 수의사 또는 수산질병관리사(비상근직 포함)를 1인 이상 고용해야 하며, 사육사 고용 기준은 동물원과 같다.

2013년에는 김해의 한 동물원에서 고작 30~40㎝에 불과한 짧은 목줄에 원숭이를 묶어 전시해 논란이 됐다. 그러나 현행 동물원법으로는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처음부터 소극적인 환경부

그러나 신설된 동물원법은 동물학대를 막거나 동물들에게 적합한 서식환경을 제공하는 등 애초 동물원법의 핵심조항이 모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산림청 및 산하기관과 관련 단체들이 식물원에 관한 법을 환경부가 관장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관련 조항이 빠졌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동물원 관련 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해 규제완화를 요구하면서 누더기 법안이 되고 말았다.

국회 법안 논의 당시 동물자유연대는 “정부안 못지않게 동물원법 제정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의 강한 반대가 더 큰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당초 법안 발의 과정에서는 동물원을 ‘허가제’로 만들어, 적합한 서식환경과 인력기준을 갖춘 동물원만 허가를 내주도록 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등록제’로 완화됐다. 제대로 된 서식환경을 갖추지 못해도 등록만 하면 동물원 운영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동물원들은 최초 등록 과정에서 유생물의 질병 및 인수공통질병 관리계획, 적정한 서식환경 제공계획, 휴·폐원 시 보유생물 관리계획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질병이 발생해도 이를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의미다. 

환경부가 동물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개체수 현황 파악에 그치는 등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형식에 그친 동물 안전

아울러 시설 내 동물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등록신청 시 안전관리계획 제출 외에는 ‘위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규정만 넣었다. 동물에게 사고가 발생해도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 시·도지사에게 통보만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형식적인 규정만으로는 동물원 내 사고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엘프스(ELPS) 이소영 변호사는 “동물원 내 안전관리와 최소한의 동물복지, 학대와 방치에 대한 예방책이 법에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동물원 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동물학대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동물쇼를 시키기 위해서는 폭압적인 방법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동원된 동물들은 동물학대에 오랜 기간 노출된 상태다. 원안에서는 동물쇼를 금지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동물쇼 금지 조항은 삭제됐다.

국회 논의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로 동물원법은 대폭 후퇴했다. 게다가 환경부 역시 법 제정이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동물원법 공청회,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벌칙조항도 대폭 완화

또한 앞으로의 서식환경 개선도 기대하기 힘들 전망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한 수족관의 생태설명회는 최대 103dB 이상의 소음에 큰돌고래, 바다코끼리 등이 노출되고 있는데, 이는 청력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넘어 정신장애와 행동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세계적인 생태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서식환경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정한 규정이 없고, 최초 등록 시에만 서식환경 계획을 보고할 뿐, 관리에 관해서는 아무런 보고 의무가 없다. 

환경단체들은 “법으로 사육환경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환경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동물의 습성과 생리에 적합한 시설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환경부는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를 무시했다.

이외에도 이번 동물원법은 당초 원안에 있던 ▷민간 참여 동물원 관리위원회 구성 ▷환경부장관의 사육 부적합 종 지정 ▷동물쇼 목적 훈련 금지 ▷가축이나 반려동물의 전시 금지 ▷정부 허가 없이 ‘동물원’ 명칭 사용 금지 등의 조항이 삭제됐고, 신고 없이 동물원을 폐업했을 때 벌칙조항도 1년 이하 징역에서 500만원 이하 과태료로 대폭 후퇴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후퇴한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부 입장에서는 회기 내 처리가 무산돼 폐기되는 것보다 부족하나마 일단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했다”고 밝혔다.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동물학대를 막고 적절한 서식환경 제공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원법’이 누더기가 되면서 동물복지는커녕 면죄부만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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