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인간중심적 헌법 가치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사진=정흥준·오정원 기자>


 

[월드컬처오픈코리아=환경일보] 정흥준 기자 =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 환경권(헌법 제35조제1항)이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등의 환경 문제로 부각되면서, 환경 보전 및 회복을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관련 최근 시민환경연구소와 환경법률센터는 월드컬처오픈코리아 W스테이지에서 ‘헌법, 환경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환경법률센터 김호철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새로운 헌정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가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새 헌법이 자리 잡길 바란다”며 환경 가치가 담긴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에 앞서 포럼 지구와사람 강금실 대표(전 법무부 장관)는 ‘생태·생명가치 존중하는 헌법’을, 환경사회연구소 구도완 소장은 ‘생태민주적 헌법질서 구축’을 주제로 발표했다.

▲포럼 지구와사람 강금실 대표

강금실 대표는 “2008년 에콰도르는 헌법으로 자연의 권리를 인정했다”며 “최근 뉴질랜드에서도 법률을 통해 인간에 상응하는 권리를 강에 부여하는 등 자연의 권리 회복이 진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헌법이 지닌 인간중심적 사고의 한계로 자연환경이 훼손돼 왔고, 자연에 대한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도완 소장 역시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현재 헌법질서의 재산권은 생태 보전과 대립할 수 있다”며 “생태민주적 헌법의 원칙으로는 가장 약한 이들에 대한 최대 배려, 미래세대 권리와 현세대의 책무, 공동자원의 공유와 지속가능한 관리 등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생산, 산업, 노동, 소유 등 사회 전반에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구 소장은 “새로운 헌법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사회와 국가를 꿈꾸는 것이 생태 민주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손해배상제도 등 법 집행 강화 필요

강원대 박태현 교수는 “습지보전법을 만들었지만,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면 법을 개정하는 식으로 지켜지지 못했다”며 “환경보호법도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고 있나를 생각하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사회연구소 구도완 소장


또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 급진적이라면 자연손해배상제도, 단체소송제도 등의 법 집행 문화가 형성돼야 하지만 한국은 법과 제도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환경권의 주체로 등장하지 못한 것은 후견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 자연환경국민신탁 전재경 대표이사는 “미래세대와 야생에 대한 보호 법익에 대해 법적으로 명시하고, 이 권리를 실현시켜줄 대리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제가 법인(法人)을 사람으로 취급하고 자연인으로 하여금 이를 대표하도록 허용했듯이, 자연에 대한 대리인 제도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경단체, 시민단체 등은 법률상 명시된 환경권을 근거로 자연의 권리를 대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연의 권리를 주장함에 따라 발생하는 갈등도 지적됐다. KEI 이창훈 부원장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가꿔야 하는 개념으로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구성된 환경이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환경과 인간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되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훈 부원장은 “특히 개체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법률 논의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며 “때문에 적정한 삶을 보장하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개헌에 대한 논의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추진력을 얻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헌법에 환경 가치를 담아내는 주제의 논의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jhj@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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