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이정은 기자 = 국내 8개 고래류 사육시설에 대한 민관공동조사를 통해 고래류 사육시설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정부가 수십년간 이를 방치한 사실이 1984년 서울대공원의 첫 돌고래쇼 이후 33년 만에 확인됐다.

민관공동조사단은 울산 돌고래 폐사사건을 계기로 정의당 이정미 의원, 동물권단체 케어, 동물자유연대, 핫핑크돌핀스, 환경부, 해수부로 구성됐으며 지난 2월22일부터 3월3일까지 열흘간 해당 업체의 시설관리(수온, 수질, 조명, 소음 등)와 돌고래 건강관리 (사료급식방법, 건강관리차트, 수의사 등) 실태를 점검했다.

그러나 공동조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이정미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업체 측의 수족관 시설 출입 제한, 자료미제출, 정부의 미온적 조사준비 등으로 인해서 공동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환경부와 해수부가 업체의 눈치를 보며 공동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거부해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민간 측 조사단의 입장만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공동조사단은 좁은 돌고래의 생활공간, 전무한 환경풍부화 시설, 열악한 의료환경 등을 확인했다. 고래류 사육시설 8곳 모두 총면적은 법적기준을 만족했지만 여러 개로 쪼개진 개별 수조의 면적은 법적기준(수면적 84m², 깊이 3.5m 이상)을 충족하지 못했다.

시민단체와 이정미 의원이 국내 8개 고래류 시설을 점검한 결과 턱없이 좁은 생활공간, 열악한 의료환경 등이

발견됐다. 그러나 환경부와 해수부는 공동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사진제공=이정미의원실>



특히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경우 10번 돌고래를 격리 중인 수조는 38m²로 법적기준의 절반에 불과했다. 보조수조는 칸칸으로 나눠있어 실제 공간은 훨씬 비좁다.

또 흰고래(벨루가)를 사육하고 있는 거제씨월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수조가 칸칸으로 나뉘어 있고, 보조수조 등 개별 수조면적은 법적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루 100㎞ 이상을 이동하는 돌고래들에게 수조 길이 20~30m는 매우 좁은 공간일 수밖에 없다.

열악한 사육환경에 노출된 돌고래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징후도 관찰됐다. 한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뛰어오르거나 계속에서 벽에 부딪히는 정형행동을 거제씨월드에서 확인했다. 거제씨월드는 이미 큰돌고래 6마리가 폐사한 곳이다. 이처럼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돌고래가 사육사를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형행동

돌고래의 건강을 관리하는 수의사가 상주하는 업체는 8곳 중 5곳이며, 3곳(1곳은 촉탁수의사)은 협진형태로 수의사가 고래류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의사가 상주하는 5곳도 법적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수의적 의료행위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수족관 전체를 한 명의 수의사가 담당하고 있어 질병 또는 상해가 발생하면 적절히 치료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거제씨월드의 경우 물냉각시설이 없어 14℃ 내외의 수온에서 생활하는 흰고래(벨루가)에게 여름철 20℃ 이상의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흰고래(벨루가)에 대한 관리기준이 없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큰돌고래 관리기준을 흰고래(벨루가)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8개 업체들은 염도, 수온, 잔류염소농도, 대장균 등을 제각각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대장균의 경우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연간 4회, 제주 한화아쿠아플라넷은 격월로 대장균을 조사했다. 해수를 사용하는 제주 마린파크와 제주 퍼시픽랜드, 거제씨월드는 대장균을 측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조발생, 해수염도변화, 지하수 오염 등에 대한 위기대응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곳은 여수와 제주의 한화아쿠아플라넷,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3곳이었으며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서류자체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한 제주 마린파크는 매뉴얼이 있다고 표시했으나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최근 일본 다이지에서 큰돌고래 두 마리를 수입해 1마리를 폐사시킨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사육사 관리 매뉴얼조차 없었다.

이정미 의원은 “업체에서 공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수족관은 법의 사각지대

서울대공원이 1984년 돌고래 쇼를 시작한 이래 지난 33년 동안 고래류에 대한 정부의 공식통계는 전혀 없다. ‘야생생물보호법’에 규정하고 있는 동물건강관리(수의적 기록, 건강검진 자료 등), 용도변경현황 등에 대한 자료가 없다.

수족관 업체의 설명과 정부의 자료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확인됐다. 고래류 수입용도에 대해서 여수 한화 아쿠아플라넷 관계자는 흰고래(벨루가)를 ‘연구용’으로 들여와 해수부 산하 고래연구센터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환경부의 ‘수입허가신청서’에는 ‘전시용’으로 표기됐다. 롯데아쿠아리움도 전시용에서 상업용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하지만 환경부는 ‘용도변경서류가 없다’고 이정미 의원에게 알려왔다.

국제멸종위기종 고래류 폐사 현황의 경우 환경부가 업체들로 받은 자료를 취합하면 22건(22마리)이지만, 공동조사단의 일원인 핫핑크돌핀스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최소 70마리 이상이다. 48마리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업체들이 ‘고래류 인공증식 미신고’, ‘업체들 간의 내부 거래 미신고’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환경부와 해수부는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해양 멸종위기종 사육시설을 관리하고 조사할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수족관 관리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족관 내에서 돌고래가 인공증식하거나 시설 간 내부거래는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업체가 보고한 내용과

현실간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동조사 방해하는 수족관 업체


조사과정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조사기간 중 일부 수족관 업체는 민관공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거제씨월드와 제주 마린파크는 국회보좌진과 동물보호단체의 현장출입을 거부하고 보안각서 서명을 요구해 1~2시간 조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롯데아쿠아리움,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제주 마린파크, 제주·여수 한화 아쿠아플라넷 5곳은 여과시설, 사료시설 등을 점검하는 조사단 인원수를 1~2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법적으로 구비하고 공개해야 할 자료를 1개월 가까이 제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여수 한화 아쿠아플라넷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수조물이 혼탁했으며 오후 3시경에 먹이점검표를 조사단에게 제출하면서 점검표에 오후 5시에 먹이를 줬다고 표기하는 등 관리가 엉망이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부실한 사전준비와 현장대응도 문제가 됐다. 정부가 수질조사도구를 준비하지 않아 8곳 중 2곳만 실시하고 나머지는 육안으로 확인했으며 수질조사결과는 28일 현재까지 제출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단체가 민·관 공동조사를 위한 점검표를 사전에 작성해 정부에 제공했으나 업체에는 전달되지 않아 조사가 비효율적으로 진행됐다. 

 

 

수족관 시설의 돌고래는 33년 동안이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나마 올 5월부터는 수족관 관리 권한이

광역 지자체장에게 이관되기 때문에 이번 공동조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형식뿐인 성의 없는 조사

 

조사에 참여한 정부산하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센터), 해양생물자원관, 해양환경관리공단, 국립생물자원관의 전문가들에게 조사평가서를 작성하게 하지도 않았다.

해수부와 환경부는 동물원 및 수족관법을 통해서 수족관 전체 관리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번 민관공동사가 마지막 공식 조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5월에 시행예정인 동물원 및 수족관법에는 지방정부의 시·도지사만 동물원과 수족관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부터는 중앙정부, 특히 해수부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관리할 법적권한을 잃게 된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경우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환경부가 일부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고래류 수족관 관리가 업체에 따라 수질조사 등이 제각각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연간 1회 점검표 없이 형식적인 정기점검을 수십년간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이러한 관리 소홀은 업체의 공동조사 거부와 법적서류미제출 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사실상 수족관은 수십년 간 방치된 법의 사각지대였다. 환경부와 해수부는 이번 민관공동조사의 한계를 바탕으로 수족관 전체에 대한 종합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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