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사망자 701명을 비롯해 3700여명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서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구체적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5년간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8배나 급증해 화학물질 관리·사용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설상가상 새로운 화학물질은 계속 개발되는 가운데 책임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상태다.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사고의 원인조차 밝힐 수 없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의 한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화평법은 연간 1톤 이상 유통되는 화학물질 중 정부가 지정한 2000여개만 환경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만5000개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불산누출 사고 등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거나 추진되지만, 기업의 반발로 인해 반쪽짜리 임시방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해야 할 법률이 국민의 생명보다는 기업 이윤을 우선하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정보와 용도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발암물질 등 고독성 물질은 제조·수입·사용을 줄이고, 완전한 알 권리를 실현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공개가 우선이다.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독성분류와 표시 결과 등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환경부는 살생물질의 안전성 검증을 위해 ‘안전관리협약’에 따른 전수조사를 예고했지만 기업의 자발성에 기대고 있어 한계가 있다. 기업이 영업 기밀을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인데 실제 공개가 거부되는 제품은 66%에 달한다.

정부의 의지와 실천이 아쉬운 대목이다. 정보 개선과 공개만으로도 소비자의 반응을 개선할 수 있고, 강제적인 지휘통제 방식보다 행정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반면, 효과는 키울 수 있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유해화학물질 배출목록(TRI, Toxic Release Inventory)은 좋은 사례다.

기업들과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환경에 방출한 잠재적 위험성을 지닌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정부에 보고케 하는데 이 정보는 환경보호국 웹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약 3만개의 공장들이 700여 가지의 화학물질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용자들도 자신들이 보유한 화학물질의 양과 종류, 보유 위치를 관할 소방서에 보고하고, 잠재적인 건강위해성에 대한 정보 역시 공개해야 한다.

어떤 행동변화도 요구하지 않고 단지 목록제출만을 요구했는데도 막대한 양의 유해화학물질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이런 좋은 방법을 도입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모든 사안을 쥐고 흔들려는 이유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기업 또한, 사용하는 화학물질 목록을 밝힐 수 없다면 사회적 책임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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