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대규모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판도라’가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규모 6.1의 지진으로 원전에 균열이 생기고, 원자로 건물이 폭발하고, 사용후핵연료까지 위험해 지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희생을 그렸다.

발전 업계에서는 판도라는 그저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근거 없는 영화일 뿐이며, 자칫 국민들에게 전력산업전체를 무능과 관리부재로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 불안한 것은 여전히 원전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안들은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검은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이다.

지난 수십년 간 에너지 공급의 효자역할을 해온 원자력발전의 가장 큰 과제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리와 원전해체다. 국내저장이 곧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한이 코앞에 닥쳤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의 한계 시점은 고리1호기의 경우 2016년, 월성은 2017년, 울진 2018년, 영광 2021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2050년에 50,000톤 2100년에 90,000톤에 이를 전망이다.

아무런 외부적 영향이 없다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고, 지금처럼 지진과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경계를 낮출 수 없다.

프랑스 라아그에는 세계최대규모의 핵재처리시설이 있다. 이 정도의 첨단 시설이라면 보안유지 역시 철저할 텐데 우리와 다른 점은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일반에 공개해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해도 채취한 샘플들과 방사능 수치를 보여주면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포스막에는 원전 1기를 만들고 추가 2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마을이 서로 가져가겠다고 경합을 벌인 일이 있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특별히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계획부터 건설, 운영까지 35년간 투명하게 전과정을 주민에게 공개한 신뢰구축의 노력이 있었다.

또한, 우리가 앞선 기술을 갖고 있다지만, 건설하고 유지관리에 주력했지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해 본 경험이 없다. 원전 관련 전과정에 대한 노하우가 없으니 겸허한 자세를 갖도록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가.

이제라도 정부와 관계 기관들이 노력할 것은 전문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괴담이라고 치부하지만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아닌 것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원전은 이슈가 불거질 때만 잠시 관심을 끌다가 또 사라지곤 할 대상이 아니다. ‘판도라’ 2탄, 3탄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