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에 치중해 경쟁력 없는 품종 도태

해외의 가치 있는 유전자원 확보 필요

 

농진청_박수봉_연구관[1]-1
어렸을 때 시골 고향집에 가면 제일 먼저 누렁이가 뛰어나와 우리 가족들을 반겨주고 마당 한편에는 토종닭과 병아리들이 먹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선 소에게 짚을 주고 계셨고 뒷마당에는 돼지가 식구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꿀꿀거리며 잘도 먹고 있었다. 이러한 평범한 시골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을 떠올리면 누구나 추억에 젖어 옛 농촌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이제 그 곳엔 옛날과 달리 가족과 같았던 동물들을 만날 수 없다.

 

현대화에 발맞추어 우리나라 농촌에는 재래품종을 무시한 채 외래 도입종으로 채워지면서 재래돼지, 오골계, 칡소, 백우 등이 점차 자리를 잃어 왔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종들도 많다. 이는 축산업이 생산성 위주로 바뀌면서 경쟁력이 약한 품종들은 무조건 도태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의 토착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품종들까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조선우마의방’의 기록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칡소, 흑우, 백우, 청우, 황우 등 다양한 모색을 가진 한우가 존재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한우 심사표준’이라는 이름하에 황색 한우를 제외한 특이 모색을 지닌 칡소와 흑우 등은 거의 사라져 사실상 멸종 위기 상태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칡소와 흑우는 황소에 비해 골격이 크고 힘이 좋은 데다 조선시대 때는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았다는 것이다. 닭과 돼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수입산 종축이 도입되면서 우리 땅에서 자라온 재래가축들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인명 피해와 더불어 국내 많은 가축 유전자원들이 사라졌다. 이후 산업화 시대 생산성 높은 외래개량종들이 수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재래가축들은 외래종들과의 무분별한 교잡 속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졌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확보하기 위해 유전적 가치가 높은 품종들을 개량하는 산업화 연구는 중요한 일이며 필수적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산업화의 전제조건은 재래품종을 보존해 종다양성을 유지하고 유전적 변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유지해야 하며 구제역과 같은 예상치 못한 악성질병의 만연으로 인한 유전자원의 손실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는 국내 다양한 가축유전자원을 발굴하고 새로 발굴했거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가축 유전자원들은 보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들어 악성질병 및 다양한 환경변화에 대비해 원래 집단을 2개 이상의 집단으로 분리해 다수의 떨어진 장소에서 사육하는 중복보존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고유의 재래가축을 복원하고 기존 집단이 질병이나 사고로 폐지되더라도 부집단을 이용하여 기존 집단을 원상태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재래품종들을 보존하면서 더 나은 육질과 육량 그리고 사람의 생활에 편익를 줄 수 있는 가축을 개량하기 위해 생축과 정자, 수정란, DNA 등의 자원으로 보존을 진행하면서 개체 다양성확보에 힘을 가하고 있다.

 

세계 가축의 종류는 28종 1만5000여 품종이며, 이 중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등재된 가축품종은 총 7616종이다. 그러나 이 중 20%에 달하는 품종은 현재 멸종위기로 분류되며, 가축생산시스템의 변화와 내전, 악성가축 질병 등으로 인해 국가별 재래종의 유지보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위기의 가축유전자원의 다양성을 보존·유지하고, 이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축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또한 유전자원 수집 및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유전자원 보존기관 뿐만 아니라 학계, 품종협회, 종축회사, 농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해외에서 가치 있는 유전자원 확보와 국제적인 쟁점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축종별 유전자원 보존시스템 구축과 특성평가를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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