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면 경제적인 면에서 여유만 있다면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은퇴 후 넉넉한 시간이 오히려 고통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라는 게 부족할 때는 한없이 소중한데, 넘치게 있으면 주체하기 힘든 속성이 있다. 은퇴 전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못한 일이 많았을 텐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일, 희망 사항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 후 풍부한 시간에 짓눌리는 데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은퇴한 후에 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는 정도로는 목표가 아니다. 구체적인 도달 단계가 정해져야 한다. 둘째는 시간표가 없다. 매일 일상을 어떤 일정에 의해 움직일지에 대한 하루 일과표와 은퇴 후 첫 1년은 어떻게 보낼지, 3년차에는 무엇을 할지 등 마스트 플랜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가나 취미, 오락이라 하더라도 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은퇴설계 상담을 하다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은퇴생활자금이나 은퇴 후 직업에 대해 비전을 갖고 장기간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휴식이나 여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 놀고 쉬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하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다. 여가 생활도 미리 준비한 사람이 잘한다.


설문조사를 보면 TV시청과 음주 이 2가지를 중심으로 은퇴생활을 하시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나쁠 뿐 아니라 서서히 자존감을 잃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특별하고 의미 있는 여가활동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여가 활동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 그래서 그것을 직업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취미생활이면 좋겠다. 이런 취미생활을 부부가 함께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취미를 통해 다른 사람, 다른 세대와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다면 좋다.


취미와는 다른 영역이지만 사회봉사는 굉장히 유익하다. 사회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본인 삶의 의미를 높일 수 있다. 분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본인이 간절히 원하고, 즐거워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게 핵심이다.


재정적인 기반이 튼튼한 사람, 전문 분야의 능력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단체나 봉사단체 등에서 좋은 상근 실무자를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런 곳에 우리 시니어들이 포진한다면 정말 든든할 것이다. 이렇게 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인생 후반부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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