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국가가 구제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제조물책임법을 따르자는 주장이지만 사실 따져보면 너무나 빈약한 논리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업자가 제조물 공급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알 수 없을 때는 그로 인한 책임이 면책되는 조항이 있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을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제조업체가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해당 업체들은 문제의 화학물질이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이지 ‘흡입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학제품에는 ‘흡입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구가 친절하게 붙어 있었지만 제조업체들은 이를 무시하고 용도를 바꿔 가습기 ‘세척제’가 아닌 ‘살균제’로 만들어 판매했고 결국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따라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이 아니라 명백하게 ‘잘못된 줄 알면서도’ 사용했다는 표현이 맞다.

또한, 피해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논리 또한 엉터리다. 잘못된 제품을 만든 일차적 책임은 제조회사에 있지만 이런 엉터리 제품을 제조·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태안 기름유출 사고나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때도 ‘긴급하게 지원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업체가 아닌 국가가 먼저 나서 지원했던 선례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질병 피해자’가 ‘사망자’로 둔갑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긴급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가가 국민을 위해, 그것도 아무런 잘못 없이 질병을 얻고 가족을 잃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혈세’를 국민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데 쓰자는 게 그렇게 아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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