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가득찬 물건들로 꽉 막혀 있지는 않은지 진단이 필요하다.




정리수납 유망직종 부상…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
음식물쓰레기 감소, 자원순환 사회 실현 등 기여 커


“버릴수록 행복해진다” 이른바 미니멀라이프가 각광받고 있다. 많은 물건의 소유가 성공이자 성과로 인정 받던 우리 사회에 작은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딱’ 그만큼만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온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우리 집 냉장고, 옷장, 신발장을 들여다보자.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한번 입고 내버려둔 옷 등으로 우리 집이 꽉 막혀 있다면 지금 당장 과감하게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을 익혀보자. 본지는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 회장을 만나 정리가 습관이 됐을 때 이뤄지는 놀라운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물건이 많을수록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 회장(덤인 대표이사)은 “예전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물건을 쌓아두고 모으는 것은 재산이자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다양한 물건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적절하고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사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자 회장은 서적 발간, 방송출연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정리수납전문가로서 우리나라에 정리수납전문가가 직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장본인이다. 정리수납 컨설팅 전문기업 ㈜덤인을 설립해 현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정 회장은 “정리수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0년도 초 캐나다 토론토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다. 그때 처음으로 물건을 정리해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직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 적용하는 데는 많은 고충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 회장(덤인 대표이사)

그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정리수납전문가’를 전문 직업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물건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서 “인식의 벽을 허물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동안 소신 있게 정리수납 매뉴얼을 꾸준히 정비해 왔고 이를 발판으로 2011년 한국정리수납협회가 설립됐다. 협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정리수납전문가를 육성하기 시작했고 현재 5만4000명이 교육을 통해 양성됐다. 


매뉴얼 공유·체계화가 성장 원동력
정 회장은 “정리수납 사업화를 준비하던 당시,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를 교육하고 파견해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이 사람들에게 정리수납 방법까지 교육했더니 첫째,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집이 변하고 둘째, 고객의 집이 변하면서 만족도가 높았다”며 “이러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인터넷, 방송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정리의 중요성과 방법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획기적으로 인식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정리수납전문가를 직업으로 인식하고, 필요로 하면서 수요도 굉장히 늘어났다. 여성 유망직종으로 ‘정리수납 전문가’가 꼽히면서 관련 교육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은 2급, 1급, 강사과정으로 나눠져 있다. 2급은 15시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며 자기 집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단계로 양성된다. 1급은 50시간 교육과정 이수로 직업으로 택할 수 있으며 강사과정은 100시간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다른 사람에게 수납정리를 교육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여성인력개발센터, 평생교육원, 복지관, 구청 등에서 전국적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정 회장은 “정리수납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배워야 한다”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이자 습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도 없다”며 “맞벌이부부와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요즘은 가사가 공동의 부담이 됐기 때문에 정리수납 숙지는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부모의 행동을 통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고 배우면서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습관화’ 필요
버리는 일은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고 쉬운 일이 아니다. 정 회장은 “나이가 들면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더 힘들다. 물건에 대한 연민, 추억으로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자기 삶을 정리해가면서 정말 필요한 몇 가지를 가지고 편하고 가볍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우리가 죽었을 때 안고 있던 짐을 남들에게 치우게 하는 수고로움은 덜어주면서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정리수납을 습관으로 고착화하고자 효율적인 정리방법을 공개한 책 ‘정리습관의 힘’을 최근 발간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정리수납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하고, 생활이자

습관이 돼야 한다.

정 회장은 “정리가 습관이 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청소를 하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아마 다들 느껴봤을 것이다. 이처럼 정리가 습관이 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리습관을 통해 돈을 아끼고, 시간을 벌고 업무효율까지 향상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수납은 무궁무진하게 활용이 가능한 유망시장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 회장은 “대부분의 주부들은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해요’라고 하지만 가장 많이 해본 게 이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노하우나 원칙만 익히면 직업으로 택할 수 있어 경력단절 여성에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사업 연계 방안 무궁무진
이외에도 여성의 섬세함과 남성의 경영을 통한 부부창업, 인테리어업 등 다양한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기회가 곳곳에 있다.

그는 “마케팅을 통한 협업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냉장고를 판매했을 때 정리수납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고객이 처음 제품을 산 그대로 유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을 선보인다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품과 정리수납 서비스를 한 데 묶은 전략법이다.


‘아까워서,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모셔두는 물건들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짐들의 공간이 되고 있다


정리수납은 환경적으로도 긍정적이다. 정 회장은 “냉장고 정리수납만 잘해도 음식물쓰레기를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 가운데 1/3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데 정리만 잘 돼 있어도 물건에 대한 파악이 쉬워져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리는 경우는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냉장고 정리수납만 잘해도 음식물쓰레기 절반을

줄일 수 있다.

아나바다 운동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이 운동이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다. 바로 공유경제로 말이다. 공유경제란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비움·나눔·바르게 채움 ‘공유경제’
정 회장은 “내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내놓기만 해도 누군가는 입을 수 있는 것처럼 공유경제가 만들어진다”며 “더불어 공간 정리만 잘해도 우리 집에 있는 공간의 가치가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쓰지 않는 물건을 공유하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내 공간까지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라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 집의 필요한 물건을 제대로 쓰고 버리기만 해도 우리 모두는 환경을 지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며 “작은 것이 모이면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버리고, 나누고 바르게 채운다면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잘 버릴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 정 회장은 “물건을 잘 버리기 위해서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쓸 확률이 10% 이내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물건이 있으면 버리는 게 맞다”며 “우리 집에 있는 잡동사니를 모아서 한 평 정도가 된다면 이를 비웠을 때의 경제적 가치는 강남 기준 2000만원을 절약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정리수납협회는 정리수납 전문가들로 구성된 ‘콩알’ 봉사단을 설립해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개선, 장애인 대상 무료교육 실시, 장학금 수여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향후 정리수납을 전문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브랜드화 할 계획이다. 더불어 글로벌 시장과 연계한 해외진출도 모색 중이다.


정경자 회장은 매일 집을 뒤집어엎어가며 끊임없이 정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정 회장은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년간 꾸준히 만든 매뉴얼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유하고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맺음말을 통해 “물건이 많을 때가 아니라 적절할 때 우리는 풍요로워 진다”며 “우리 집에 가득찬 물건들로 변비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진단이 필요하다. 어떤 공간에 변비가 걸려 있다는 것은 결국 썩거나 악취가 나고 있는 것이다. 막힌 공간을 잘 뚫어 준다면 물건도 순환이 되고 내 삶의 공간이 깨끗해지고 결국 사회가 건강해 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정리=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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