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한종수 기자] 지난 4일 내린 폭설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눈더미가 대부분 처리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제설 작업에 시와 25개 자치구 공무원 13만명과 민간인 작업인력 16만명, 군·경 인력 3만여명 등 30만명이 투입됐다.

 

시는 그 동안 도로에 쌓여 있던 총 51만9596㎥의 잔설을 제거했는데, 이는 15톤 덤프트럭 5만7732대에 실을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덤프트럭 5904대와 굴착기 3443대, 페이로더 228대 등 3151대의 중장비가 동원됐고, 이 기간 제설제는 염화칼슘 8천460톤과 소금 2천308톤 등 1만768톤이 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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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거리에서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을 동원해 잔설처리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11일 오전까지 15톤 덤프트럭 약 6만대에 이르는 잔설을 초등학교 등 141 곳에 모아 처리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염성규(남·35)씨는 “일주일가량 생활에 불편을 줬던 눈더미가 처리돼 다행”이라며 “혹시 다시 올지 모르는 폭설을 대비해 좀 더 빠른 대응체계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처리된 잔설이 인근 학교 운동장에 버려져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N초등학교 운동장은 구내 어린이를 위해 눈썰매장으로 꾸미고, 플라스틱 눈썰매와 튜브 등 200 개씩을 마련해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빌려 주고 있다고 한다.

 

하얀 눈 속 온갖 유해물질 범벅

 

하지만 이렇게 처리된 눈 위에서 뒹굴며 놀이를 즐기기에는 눈이 주는 악영향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깨끗하게 보이는 눈 속에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각종 유해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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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덤프트럭이 학교 운동장에 눈더미를 쏟아붓고 있다.

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눈 속에는 황산염·질산염·암모니아 등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 들어있어 피부·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눈 위에서 뒹굴며 즐기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충고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부가 약한 어린이에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눈에 포함된 온갖 유해물질로 인해 가려움증·발진이 나타날 수도 있고, 특히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어린이는 피부가 과민반응을 일으켜 증상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폭설로 사용된 염화칼슘 등의 제설제는 눈과 뒤범벅이 되면서 가로수, 토양 오염 등 환경 피해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염화칼슘과 소금은 토양의 염분을 높여 가로수와 식물의 수명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제설제가 환경적 피해 논란과 더불어 인체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것. 염화칼슘은 수분과 만나 반응하면서 온도가 올라가 눈을 녹이게 된다. 하지만 이때 남아 있는 제설제가 피부와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안전 위협에 해당 구청은 ‘나몰라’

 

서울 용산의 모 초등학교 운동장에 쌓여 있는 희뿌연 눈더미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돼 버린 눈더미를 오르며 신이 난 듯 즐기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가파른 눈더미가 위험에 보이지만 안전 펜스나 경고성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용산)금양초등학교.

▲서울 용산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안전펜스나 경고문구가 없는 눈더미 위에 올라 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에 본지 취재팀이 용산구청에 문제를 제기하자 유관식 도로관리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안전 펜스가 설치 안 돼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문제가 있다면 알아서 기사 쓰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놨다.

 

해당 관청의 ‘눈만 치우면 그만’ 식이 행태도 문제지만 후속 조치에 대한 의식이 전무하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서울시 제설대책본부 관계자의 답변 또한 “각 자치구에서 하는 일이라 본부에서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안전 위협뿐만 아니라 환경적 피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폭설 대책에 어느 부처에서도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의 관계자도 폭설 대책, 염화칼슘 등의 제설제 피해에 대한 사항에서 “환경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눈의 정체… 폐기물? 먼지덩어리?

 

특히 쌓여 있는 잔설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어떠한 관련법도 잔설에 대해 폐기물로 보고 있는지, 자연적인 강우량인지, 먼지 덩어리인지 뚜렷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 물환경정책국 진원기 사무관은 “잔설을 폐기물로 규정한 사례도 없고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 “일시적인 폭설로 생긴 잔설이지만 토양이나 환경오염 등에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염화칼슘이나 소금 등의 제설제가 섞이지 않은 잔설은 기온이 올라 녹으면서 가뭄 해갈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갈수기에 흔히 발생하는 삼림의 고사, 농지의 건조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속되는 영하 날씨로 쌓인 눈더미가 녹지 않아 방치됐을 경우, 생활에 불편을 주는 것과 동시에 위생적인 문제, 먼지와 오물에 섞인 잔설이 거무스레 변해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천재지변이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정당국이 이를 방관하기엔 무책임한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학교 운동장에 쌓인 눈더미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 본 한 시민은 “당분간 계속되는 맹추위로 눈더미가 녹지 않고 저렇게 방치돼 있을텐데 아이들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jepoo@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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