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는 급증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발굴에 한계가 있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고민을 해결하는 궁극적 대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기자동차가 주류 시장에 등장하는 시점’이다. <편집자 주>

 

기아 하이브리드.

▲전기차 시장이 생각보다 늦게 열리면서 자동차 업계는 하이브리드 개발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이해관계자는 내연기관차를 원한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만연하다. 10년 뒤에도 자동차 시장에서 2% 미만을 점유하는 틈새시장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 이해관계자 처지에서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시장 상황에 따른 현실적 선택은 기존자동차인 내연기관 자동차에 집중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장선상에 놓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발에 역점을 두는 전략이다. 현 시점의 전기자동차는 가격, 완성도, 사용자 만족도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자동차에 집중함으로써 기존에 보유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최근 흐름도 남다른 디자인이나 차별적 성능보다는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최근 개최되었던 베이징 모터쇼에서 대두된 주요 화두는 ‘고연비’와 ‘소형화’였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자동차에 대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 몇 년간 ‘매연 제거’를 강조하는 전기자동차에서 찾던 친환경의 해법을 ‘연비 효율 개선’에서 찾는 것도 흥미롭다.

 

전반적인 환경 보호 의지도 약화되고 있다. 당면한 경기 침체를 헤쳐나가는 것이 급선무가 되다 보니,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한 논의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되풀이되고 있다. 과거에는 발굴 과정의 환경 유해성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세일가스 등 비 전통 에너지원에 대한 채굴 기술이 발달하면서 화석 에너지 가격도 종전의 우려보다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엔진.

▲자동차 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의 기술 개발을 통한 효율성 증대를 원한다.<사진=환경일보DB>


스마트폰은 시장을 바꿨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전기자동차에 대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있다가 전기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전기자동차로 짧은 시간에 반전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발하면서 유가가 급변한다든가 혁신 전지의 등장, 그리고 스마트폰의 애플 같은 특출한 사업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면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열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2007년 1월에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시장에 등장했을 때, 아이폰의 성과에 대한 일반적 전망은 글로벌 시장에서 1% 미만을 점유하는 틈새시장용 모델이라는 인식이었다. 당시 애플의 CEO이었던 스티브 잡스도 2008년 아이폰의 목표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1%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40%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휴대폰 시장을 이끌고 있던 노키아도 아이폰의 파급력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lg전자).

▲애플의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시장 전체를 바꿨다.

자동차 시장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사진제공=LG전자>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애플은 아이폰 덕분에 시가 총액이 5414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 세계 시가 총액에서 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급성장을 이룩하였지만,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노키아는 얼마 전 1만 명 감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구조 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뜻밖에 빨리 열린다면 준비가 부족한 자동차 기업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시장을 평정해나갈 때 준비가 부족했던 글로벌 휴대폰 기업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

 

시장 더디게 열려도 시간 많지 않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예상처럼 천천히 형성된다 해도 여유롭게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 주기와 제품 수명이 짧은 IT 부품과 달리 자동차 부품은 개발에서 생산까지 이어지는 기간이 매우 길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는 ABS (Anti-lock Brake System) 개발에 20여 년이 걸렸다. 2015년에는 자동차 부품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4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전장부품에 대한 준비는 1950년대부터 시작했다. 물론 오랜 개발 기간 이상으로 자동차 부품의 수명은 매우 길다. ABS는 30년이 넘도록 보쉬의 대표적인 효자 제품이 되었다. 더구나 전기자동차는 동력 전달, 가속과 변속, 제동 등에서 기존자동차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이다. 획기적 기술이 등장할 여지도 높지만, 이를 상용화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많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 또는 부품 기업이 더딘 시장의 움직임에도 불구 시장을 선도하고자 전기자동차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BMW의 i 시리즈는 전기자동차 전용으로 디자인되고 설계된 최초의 자동차이다. BMW의 기술 담당 매니저는 “i 시리즈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포괄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신소재부터, 주요 기능, 디자인, 생산 공정까지 일괄적으로 개발한 자동차로서 출발 자체가 전기자동차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고효율 친환경 자동차로서 기존자동차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전기자동차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르노 전기차.
▲BMW, 테슬라, 르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전기차 개발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우리의 경쟁상대는 애플”

 

1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렸던 전기자동차인 ‘로드스타’를 개발한 미국의 테슬라는 가격을 30%에서 50% 낮춘 차기 모델 S를 통해 전기자동차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테슬라의 CEO는 ‘모델 S는 닛산 Leaf 같은 조그만 상자형 자동차가 아닌 포르쉐 자동차보다 가속도가 뛰어나고 코너링에도 압도적 성적을 보이는 전기자동차’라고 강조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부품을 주로 사용한 모델 S는 주행 거리도 300마일에 달하는, 기존자동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전기자동차로 보인다. 또한 테슬라는 자사의 경쟁 기업은 GM이 아닌 애플이라고 강조하면서 판매점도 유명 의류 판매점 바로 옆에 있어 새로운 가치를 찾는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지금 전기자동차 개발에 뛰어들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전기자동차 개발의 당위성을 설명한 카를로스 곤이 CEO로 있는 르노는 지난해 말부터 4종의 전기자동차를 차례로 시장에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르노는 2차전지 팩을 임대하여 판매 가격을 낮추는 사업 모델, 2차전지 팩을 교환하여 충전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화하는 충전 모델 등을 개발하며 전기자동차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자료=LG경제연구원, 정리=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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