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농촌에는 멧돼지, 고라니 등 유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매해 반복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민원 신청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피해 구제는커녕 지자체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어쩔 수 없다”는 말 뿐이다.

특히 최근 먹이사슬이 사라진 자연생태계에서 멧돼지는 거의 천적이 전무할 정도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18개월이면 임신이 가능하고 한번에 7~13마리까지 낳는 돼지의 특성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가는 개체수를 통제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산청군 지막리 신촌마을의 피해도 현재 심각한 상황이다. 마을 주민 김분애(69세) 할머니는 “새벽만 되면 멧돼지들이 새끼까지 모두 데리고 내려와 온 동네 논과 밭에 들어가 땅을 파헤치고, 작물들을 짓밟고 다 먹어 치워버려 마을 전체가 수확물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심각한 피해를 호소했다.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평균 나이가 70세 이상으로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라며, 김 할머니는 “그동안 군에 수차례 이야기 해봤지만 어떤 지원도 없었다. 멧돼지 포획도 환경단체들이 반대해서 잘 이뤄지지도 않는다. 마을 주민들 모두 심신이 지쳐 이젠 거의 포기 상태”라고 전했다.

호랑이, 늑대 등 상위포식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멧돼지는 무법자로 군림하고 있다.



지난해 야생동물 피해 108억원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유해야생동물로 인한 농가의 피해액은 108억원에 달한다.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수확기에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많은 지역이나 야생동물의 서식밀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한해 주민들의 신고가 있을 경우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시·군·구별로 운영된 수확기 피해방지단은 당시 10개 시·군에서 운영하던 것이 2014년에는 156개 시·군·구로 확대됐고 포획된 야생동물 숫자도 급격히 늘었다.

환경부는 최근 5년간 피해방지단이 포획한 유해야생동물은 70만 마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난해에만 하더라도 16만 2459마리가 포획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2월 세종시에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이후 총기 사용이 까다로워지면서 멧돼지 포획도 어려워졌다. 경찰은 3월부터 총기 출고를 위한 ‘보증인 입회’ 지침을 마련해 기존에 집에서 보관하던 ‘5.6㎜ 이하 공기총’도 전부 경찰시설 내 보관키로 했다.

허술했던 총기반출 기준을 강화해 대형 인명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에서지만 야생동물로부터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농민들은 ‘규제를 풀어달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전처럼 대도심에 속해 야간 출고가 어려운 곳에서 더 불만이 많다.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는 멧돼지뿐만이 아니다. 특히 멧돼지 출현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심의 경우 비둘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화의 상징은 옛말 ‘닭둘기’

 

한 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기하급수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비둘기가 도심 곳곳에 배설물을 쏟아내면서 악취, 도시미관 저해 등 환경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환경부는 2009년부터 비둘기를 유해 동물로 규정하고 있지만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비둘기 배설물로 인한 각종 민원이 빗발치지만 포획에 한계가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민폐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도심 속 비둘기는 버려진 음식물 등 먹이 구하기가 쉬워지면서 몸집이 커져 ‘닭둘기’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무자비하게 배설물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지만 거대 몸집을 한 비둘기 수십 마리가 사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떼를 지어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둘기의 깃털과 배설물에서 나오는 각종 세균이 인체에 옮겨 붙을 경우 각종 폐질환이나 비염, 뇌수막염, 실명 및 알레르기와 피부염과 같은 60여가지의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둘기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자 군산시에서는 기업피해 대책마련 회의까지 열었다. 군산항에 서식하고 있는 비둘기들의 배설물로 제품오염 및 생산설비 부식 등 산업단지 기업들의 재산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군산시 환경위생과 환경정책계 김원진 담당자는 “군산항에 터를 잡은 비둘기들이 배설물을 쏟아내 악취 등 위생상으로 좋지 않고, 또한 제품에도 떨어지다 보니 소비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책마련 회의를 열었지만 딱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라며 “수천마리가 있는데 포획을 하면 동물 학대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개체 수 조절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생태계 균형 무너뜨리는 외래종

지자체들은 뉴트리아에 대해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피해가 여전하다.

생태계 피해로 보면 토종보다 외래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하다. 인간에게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균형을 심각하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최근 강원도에 나타난 ‘피라니아’는 관상용 애완 어종으로 키워지다 몰래 방사돼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외래식물은 주로 종자가 날려 국내로 유입되지만 그 밖의 외래종 생물은 사업목적, 식용으로 수입됐으나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아 방치된 채로 번식한 경우가 많다. 외래종 특유의 번식력과 생명력으로 생태계의 불균형 문제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생태계 교란 어종으로 지정된 배스(Bass)와 블루길(Blue gill)은 어종을 막론하고 자신보다 작은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하천 구역 생태계를 방해하는 주범이다.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 생물인 황소개구리는 식용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보통 개구리의 천적으로 알려진 뱀까지 잡아먹는 놀라운 식성을 지닌 황소개구리는 먹이사슬을 파괴해 생태계 피라미드 균형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성묘나 벌초가 잦아지는 시기, 벌떼의 위협으로 인한 구조대의 출동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외래종 말벌인 ‘등검은말벌’의 등장은 농촌뿐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자주 발생하는데 아열대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 따뜻한 곳을 선호해 열섬현상이 일어나는 도심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검은말벌은 토종말벌보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독성이 20배가량 강해 노약자가 쏘였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1980년대 모피를 얻기 위해 남미에서 수입된 쥐 ‘뉴트리아’는 몸길이가 1m, 무게가 10㎏에 달한다. 낙동강 유역을 근거지로 하다 최근엔 개체 수가 늘어 제주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감자, 당근, 옥수수 등 농작물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뿐 아니라 날카롭고 큰 이빨을 가져 사람까지 위협하고 있다.

팔지도 못하니 묻을 수밖에

유해야생동물은 살아서도 피해를 주지만 죽어서도 문제다. 포획된 유해야생동물 처리에 관한 지침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15년도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운영계획’에는 포획동물의 처리에 대해 ‘야생동물 포획자는 관할 시·군·구와 협의해 자체 처리하되 상업적 목적의 거래·유통을 금지(수렵인 자가소비, 피해농민 무상제공, 소각·매립 처리 등)’라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수확기에 각 지자체의 피해방지단이 잡는 동물이 하루에도 수십 마리가 넘는 경우가 허다해서 자가소비도 쉽지 않다. 포획된 야생동물 일부는 불법으로 건강원 등으로 유통된다.

유해야생동물 포획 시 상업적 목적의 거래는 금지됐기 때문에 방치하거나 아무렇게나 매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한 환경오염, 전염병 발생 우려가 높다.



그렇다고 소각을 하기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매립하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나 매립도 제때 이뤄지지 않아 포획한 유해야생동물의 장시간 사체가 방치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다.

야생동물을 아무렇게나 매립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침출수로 인해 토양과 수질이 오염될 우려가 높고 전염병 발병 위험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자스민 의원은 “지침이 없어 포획한 유해야생동물의 사체 처리가 지체되면 부패로 인해 악취가 발생하거나 다른 유해야생동물을 유인하게 된다. 또 전염병의 발원지가 될 수도 있다”며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한 이후 사체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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