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문으로 우리나라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는 농업, IT, 환경, 문화 등 잠재력 있는 분야의 구체적 협력방안을 담은 행동계획을 채택하기도 했다. 자원외교에 집중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의미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친환경외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전망이다. 본지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중앙아시아 현장을 취재하며 중앙亞 국가들이 바라는 점들을 그들의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각 정부 관료들과 인터뷰를 하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 기술, 인력 등을 파악하고 협상전략도 들어봤다. 이런 정보를 토대로 한국의 많은 기관, 기업들에게 진출 활로를 모색하고 아울러 문화, 역사, 종교 등의 민간분야를 다룸으로써 잘못된 편견을 지우고 상호간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개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분리 독립한 나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아제르바이잔을 흔히 ‘불의 나라’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일찍이 지하 여기저기서 불이 올라와 고대의 사람들이 섬기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배화교의 전신이다. 아직도 아제르는 유라시아에 속해 있으며 이란과 러시아 중간에 위치하고 옆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위로는 그루지아가 있다. 또 세계에서 제일 큰 호수인 카스피해가 있으며 수니파에 속한 이슬람 국가다. 영토의 크기는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900만 명 정도이며 수도는 ‘바쿠’로 350만 명이 사는 도시다. 아제르는 카자흐스탄에 이은 중앙아시아 제2의 산유국이며 석유 및 가스 산업에 집중돼 있는 경제구조를 지닌다. 옆 나라 터키와의 관계는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할까?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긴밀한 유대 관계가 형성이 돼 있다. 터키계의 모 대기업은 아제르 국가 경제의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카스피해 분할 문제를 놓고 주변 4개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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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제르바이잔에는 도심 녹지사업으로 300만 그루의 나무 심기가 한창이다. 부족한 삼림지역

확보를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선 것. 이에 따른 한국 기업과의 환경협력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바쿠

중심가 공원. <사진=한종수 기자>


투르크벨트의 한 축, 아제르를 살펴라

상대국 의지 강한 중점사업에 접근 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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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시청사의 모습. 유럽풍의 고건물이 도시를 아

름답게 만든다. <사진=한종수 기자>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기 위해 영업사원 두 사람을 보냈다. 직접 가서 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발을 신지 않고 다녔다. 영업사원 중 한 사람은 신발 팔기가 어렵겠다고 판단해 철수보고를 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대다수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으니 잠재 구매자가 많은 황금시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아제르바이잔(이하 아제르) 현지에 내딛는 순간 느낀 것은 ‘유럽이구나!’였다. 중앙아시아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아제르의 수도 바쿠는 이태리 건축 양식으로 한껏 멋을 낸 유럽의 한 도시 같았다. 이곳저곳에서 고층 빌딩 건설이 한창이었는데 고풍스럽게 짓는 건물과, 현대식으로 짓는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솟아오르고 있다. 현지 기업인에 따르면 바쿠에만 지난 한 해 동안 삼백 개가 넘는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건설업이 세계경제 침체 여파로 개점휴업(?)한 것과 배치된다. 이렇듯 바쿠시내 건축 붐 등의 영향으로 건설부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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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를 파는 상점. 바쿠시 성곽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진=한종수 기자>

반면 바쿠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면 유럽풍의 멋스러움은 사라지고 열악한 토양, 주택가들이 펼쳐진다. 함께 동행한 현지인은 “지하에서 솟아 나오는 기름 때문에 곳곳에서 시추작업이 이뤄지곤 한다”면서 “이로 인해 토양 오염, 수질 오염이 심각한 상태다”고 밝혔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산업이 아닌 개발 사업이 아닐까라는 의문도 잠시. 하지만 아프리카 땅에서 대박 신발사업을 꿈꾸듯 한국의 기업들이 환경협력을 위해 이곳에 진출해 있다.

 

지난 2006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아제르 방문으로 한·아제르 경제·통상협력 관계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자동차, 전자제품, 폴리아세틸수지 등의 주요 수출품을 시작으로 문을 두드렸고 우리나라에서는 원유를 수입했다. 유전 개발은 물론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도로·통신·발전소 등 인프라 확충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기업 진출도 두드러진다.

 

높은 경제성장률 원동력은 ‘원유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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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 석유 시추를 하는 모습. 이같은 광경이 아제르 곳곳에서 목격되곤 한다. 

아제르를 두고 오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유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보다 11년 앞선 지난 1848년 바쿠지역에서 세계 최초로 시추작업을 했으며, 19세기 후반 세계 석유생산의 중심으로 부상해 세계 석유공급의 절반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시 볼셰비키 군의 원유 수요 70%를 담당했던 바쿠는 히틀러의 첫 번째 공격 목표로 히틀러는 반드시 바쿠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바쿠는 살아남게 된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아제르 정부는 거대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투자를 유치해 카스피해 석유·가스 개발을 적극 추진한다. 영국의 BP사를 비롯해 15개국 30여개 기업들과 생산물분배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세계의 거의 모든 석유 메이저들이 아제르에 진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석유와 가스 분야가 산업성장의 원동력이 된 배경이다. 하지만 석유·가스에만 의존하는 산업구조에서 탈피해 건설, IT, 농업, 의료 분야 등으로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비에너지 분야 발전에 필요한 외자 유치에도 적극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코카서스 산맥 아래 위치한 아제르, 구소련 독립 후 잦은 정권교체와 화폐개혁으로 인플레, 시장 붕괴 등 극심한 경제침체를 거치기도 했으나 현재는 안정적인 정세와 지속적 대외관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제르 마음 얻기 위해 터키를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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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은 투르크계 아제르인 91%

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밖에 다게스탄

인,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공존하며

사는 다민족 국가다. 총 인구는 860만 명.

사진은 바쿠시청사 앞을 거니는 시민의

모습. <사진=한종수 기자>

아제르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아주 좋다. ‘형제국가’라는 칭호를 주로 사용하곤 하는데 터키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잘 알다시피 과거 돌궐족이 서방으로 이동해 오스만 투르크(현 터키의 조상)제국을 건설한다. 과거 돌궐의 형제국이던 고구려, 그 후예인 한국을 돌궐의 후예 터키인들이 형제의 나라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Turkey)라는 나라 이름은 투르크(Turk)에서 왔다.

 

과거 한 국가였던 아제르와 터키의 관계는 굉장하다. 아제르 환경자원부 피르돕시 차관은 “아제르의 고통은 곧 터키의 고통, 우리는 한 민족 두 국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아르메니아와의 분쟁에서도 터키는 아제르를 도왔다. 유럽으로 향하는 아제르의 주요 원유·가스 송유관은 터키를 거치지 않고선 나갈 수가 없다.

 

“형제의 형제는 곧 나의 형제다” 피르돕시 차관의 말이다. 현재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수 한국 기업들이 아제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주기를 은근 기대하는 아제르 정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모 기업이 아제르와 맺은 조선업, 신도시개발 사업 약정을 파기하고 철수해버려 신뢰감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아제르 주재 한국대사관 정태인 공사는 “아제르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터키와의 관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제르를 포함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 터키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범투르크 민족주의가 언제 다시 부활해 라인을 형성할는지 모른다.

 

최근 투르크 민족국가 6개국의 움직임이 수상치 않다. 유럽연합(EU)처럼 지역 공동체를 형성해 뭉칠 수도 있는 문제다. 빗나간 얘기일지 모르지만 500만 이상 투르크 집단 중 유일하게 독립하지 못한 신장위그르(중국의 자치구)를 두고 중국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르크 민족의 단결은 세계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어찌 보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다. 과거 투르크(돌궐)와 동맹이었던 고구려의 후예니 말이다.

 

상대국 니즈 파악, 패키지 사업으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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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소련군에 의해 희생당한 바쿠시민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공원'. 독립요구집회에 소련군은 무

자비한 학살을 감행했고 한날 한시에 150여 명이 숨졌다. <사진=한종수 기자>


아제르에 진출한 기업인 A씨는 “아제르에 와서 한 수 아래인 나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끊임없는 접촉과 먼저 손 내미는 노력, 친구로서의 존중 없이는 무조건 실패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아제르인들의 자존심과 민족주의, 생활 방식의 이해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없던 계획도 만들며 기존 프로젝트와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단독 사업이 아닌 바로 ‘패키지 프로젝트(Package Project)’다. 옷 가게 가서 양복 한 벌을 구입했는데 돌아서려는 순간, “톱스타 B씨는 그 양복에 이 넥타이를 즐겨 매곤 하죠. 최고의 환상 조합이라 할 수 있어요.” 라는 점원의 말. 여윳돈이 있다면 대부분의 고객들이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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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 도심의 한 건물. 이러한 이태리 양식 건축물이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사진=한종수 기자>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맨 처음 ‘양복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상대국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아제르 진출 기업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예를 들어, 300만 그루 나무 심기와 깨끗한 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려는 환경부에게 “카스피해 물을 정화해서 푸른 해양 도시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면 “그래 만들어보자, 대신 자본은 당신이 대라”고 못 박을 것이다.

 

물론 계획은 좋지만 그보다 정부의 의지가 강한 중점사업에 접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후 그것과 연계해 어떻게 패키지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 발굴이 중요하다. 엄청난 규모의 나무심기로 삼림을 조성했지만 적은 강우량과 물 부족으로 말라 죽는다면…. 300만 그루 나무 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아제르 환경부에 이렇게 제안해보자. 나무의 보존을 위해 하수 재처리시설을 만들어 적은 예산으로 나무에 물을 대고 물 부족 걱정도 함께 덜어보자! 라고 말이다.

 

바쿠=특별취재팀 김익수 팀장, 한종수 기자

조은아·정종현·김경태 기자

 

도움주신 기관... 한국언론재단, 외교통상부 에너지기후변화과,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한국환경자원공사, KOTRA, KOICA, 아제르바이잔 주재 한국대사관, 부국환경포럼(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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